안철수는 청년들을 위로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을 못해 부모님 앞에 죄송스러웠던 청년들에게 그는 큰 위로가 되었다. 기성 정치세력에게 분노하고 정치 자체도 혐오하던 국민들에게 그는 각별한 존재가 되었다.
정말 혜성같이 나타난 그의 존재는 마치 구세주라도 된 듯한 느낌이다. 자신의 빛나는 성공을 사회로부터 받은 은혜라면서 그 은혜에 보답하는 차원에서 큰 재산을 내놓기까지 하니 그에 대한 세상 사람들의 호응이 대단하다. 은혜에 대한 보답, 양보와 나눔 등 말은 쉽지만 아무나 실천하지는 못했던 일을 그는 너무 쉽게 했다. 사람들이 환호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안철수가 만일 대통령이 된다면 세상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
?
삶에 지친 영혼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위로를 건네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이 삭막한 세상에 온기가 돌도록 할 수 있을까?
고단한 삶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불안을 걷어낼 방책을 제시하고 밀고 나갈 수 있을까?
안철수 현상이 기성정치에 대한 실망과 분노의 표현이라면 기성정치가 불안과 좌절의 원인인 셈이다.
그렇다면 안철수에게서 떠올릴 수 있는 정치는 기성정치를 넘어설 수 있는 그런 정치여야 한다.
그런데 민주니 진보니 개혁이니 하는 말로 포장되는 정치로는 기성정치를 넘어설 수 없다.
약육강식, 승자독식의 자본주의 아래서 자본의 먹이가 되어 있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내고 자본의 억압과 수탈을 구조적으로 타파할 수 있는 정치라야 기성정치를 넘어선 정치라 할 수 있다.
안철수라면, 안철수를 중심으로 형성될 정치세력이라면 이게 가능할까?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오죽 좋겠는가마는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의 불안과 좌절은 열심히 일해도 삶이 안정되지 않고 뜻을 이룰 수 없는 데서 온다.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약속으로 정치를 독점했던 1%는 철밥통을 차고 있지만 99%의 밥통은 위태롭기만 하다. 경제가 어렵다하나 서민들만 죽어날 뿐 재벌들은 배가 터지고 있다.
안철수가 이런 정치세력과 자본의 지배체제에 맞서 99%의 편에 설 수 있을까? 

지난 7일 노동부는 현대·기아차를 비롯한 국내 완성차 5개사에 대한 근로시간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놀랍게도 완성차업체 노동자들은 평일 잔업과 휴일 특근을 합해 1주일에 55시간 넘게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0시간 기본근무에 연장근로 한도를 12시간으로 정해놓은 근로기준법조차 어기며 장시간 노동을 해온 것이다. 완성차뿐이겠는가? 완성차업체에 부품을 적기에 공급해야 하는 부품업체 및 사내하청 노동자들 역시 완성차 시스템에 맞춰야 하기 때문에 똑같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외국 업체의 연간 노동시간이 1600시간대인 데 반해, 한국은 그 1.5배인 2400시간대로 무려 연간 800시간 이상 더 일하고 있는 셈이다. 만일 노동시간을 외국 업체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면, 현재 자동차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규모를 1.5배로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수십만명의 신규 고용창출 효과가 생긴다(2011. 11. 20 경향신문)”. 

현대자동차의 올해 순이익은 79천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는 지난 해 순이익 54,413억 원에 비해 45% 이상 늘어나는 것이며, 세계 경제위기가 휘몰아친 2008년 순이익 8,578억에 비교했을 때 무려 920% 증가하는 것이다.
또 현대차그룹은 올해 상반기 상장 계열사 순이익이 91679억 원으로 부동의 1위였던 삼성그룹(81036억 원)을 앞질렀다.현대차그룹의 막대한 순이익은 정규직 노동자뿐만 아니라, 사내하청 노동자와 부품사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졌다. 이명박 정권은 법인세 감면, 고환율정책, 폐차지원금으로 국민의 세금을 퍼부어 재벌의 배를 더욱 불렸다.
올해 예상되는 현대차 순이익의 단 1.6%면 사내하청 노동자 1만여 명을 모두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수 있고, 실업으로 고통 받고 있는 청년들에 대한 신규 채용을 통해 안정된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현대차 자본은 꿩 먹고 알 먹기이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사내하청 비정규직 사용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 도리어 현대모비스, 현대위아 등 주요 계열사에서 정규직은 관리자이고, 생산현장은 모두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인 정규직 0명 공장을 늘려가고 있다(2011. 11. 18 레디앙)”.

자동차업계의 노동시간을 국제기준에 맞추는 것만으로도 수십만개의 일자리가 생겨난다지만 재벌기업들이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 창출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
현대자동차가 올린 이익의 1.6%만 떼어내도 현대차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다는 데 현대차는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라는 대법원의 판결까지 계속 묵살하고 있다. 

안철수에게서 사람들이 떠올리는 새로운 정치가 정말로 희망이 되려면 이와같이 더불어 살기를 거부하는 자본을 다스릴 의지와 힘이 있는 정치라야 한다.
하지만 자신의 재산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아낌없이 내놓을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과 약자를 수탈하는 자본에 맞서 싸우는 정치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노무현도 한 때는 특권과 반칙을 용납하지 않는 나라, 고졸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를 외쳐 수많은 사람들을 열광시켰지만 결국 용두사미로 끝나지 않았던가?
권력은 시장(자본)으로 넘어갔다고 선언함으로써 국가권력마저 국민의 것이 아니라 자본의 것이 되어버린 현실을 증언하지 않았던가? 

안철수는 다를까? 다르다고 봐야할 어떤 근거 같은 게 있는가?
 없다.
반한나라, 반이명박을 외치며 한참 야권통합에 열중하고 있는 세력도 이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반사이익으로 정권을 잡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리해서 한나라 꼴통들을 몰아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 이상 기대할 것은 없다.

다가오는 경제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고 서민들의 삶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자본가들에 맞서려는 의지와 힘을 가진 정치세력의 등장을 기다릴 수 밖에 없다. 자본가를 통제하고 자본가의 서민수탈을 막아낼 수 있는 정권 없이 경제파탄으로 가장 고통받을 서민을 지켜낼 방도는 없다.

안철수가 할 수 없는 것, 안철수 대통령에게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Posted by 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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