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단결하라'

 
2차 희망버스 때 일이다.
부산
한진중공업앞 차도 집회장소에 사회당의 젊은 청년 둘이 이런 내용을 새긴 플래카드를 들고 서 있었다.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 노동자를 일컫는 말이다. 임시직, 기간제, 일용직, 파견노동자, 비정규직 등 불안정한 고용상태의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불안정 노동자들 중 이 프레카리아트란 말이 자신들을 두고 하는 말이란 걸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사회당은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나름 열심히 활동하는 당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별로 존재감이 없는 당이다. 작년 선거때는 은평 보궐 선거에 금민 전대표가 출마했다. 진보단일후보로 진보신당의 지지도 받았다. 그런데 득표는 0.1%에 그쳤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사회당의 존재감은 이 정도다. 존재감이 이 정도 밖에 안된다는 것과 사회당 당원들이 들고있는 플래카드에 쓴 프레카리아트란 말 사이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물론 직접적인 연관은 없다. 하지만 무언가 던져주는 것은 있다 

만국의 불안정 노동자여, 단결해서 자본주의를 엎어버리자 ’.

이게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일 게다. 그런데 멀쩡한 불안정 노동자들을 장님으로 만들어 놓고 어떻게 불안정 노동자들이 자신들에게 동조하도록 하겠다는 것인가?

자신들의 유식함을 드러내 보이는 것 보다 자신들의 뜻을 누구든 알아먹을 수 있게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동조자 지지자를 만들어 세상을 바꾸길 꿈꾸지만 어떻게 해야 동조자 지지자가 생기는지 모르면서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세상을 바꾸려면 그 세상을 바꾸는 일에 나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해 알아야 한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자신감이 있는 사람들보다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세상 바뀌기를 더 간절하게 갈망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는 어려운 외래어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는 한글도 깨치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글만 아니라 우리말로 해도 뜻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지금 세상에 아직도 굶는 사람이 있을까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세끼밥을 다 챙겨먹지 못하는 사람들이 허다한 것처럼 말이다.

소위 99%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1%가 독식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희생물이라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차이도 많다. 재산이나 소득상에도 많은 차이가 있지만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외감이나 박탈감에서도 많은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나 인간존중의 가치를 설파하면서 개혁 진보를 외치는 사람들은 이 세상의 소외받는 사람들을 대변하는 말을 많이 한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 조차도 소외받는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예사로 한다. 자기네들 사이에 익숙한 말들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외래어나 어려운 말은 말할 것도 없고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에 따라 의미나 해석이 달라질 수 밖에 없는 추상적인 말들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새로운 사회 바른언론, 개혁, 진보 같은 말들이 그런 것들이다.자본주의 사회나 사회주의 사회라고 하면 객관적으로 와 닿는 것이 있다. 보수언론, 진보언론도 언론의 당파성에 따른 구분이기 때문에 차이가 느껴진다. 개혁도 자본주의 체제내에서의 개혁과 자본주의 체제를 뛰어넘는 개혁으로 구분해서 말해야 이해하기가 쉽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개혁이란 말에서 떠올릴 수 있는 내용은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다.이런 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주관적으로 쏟아내는 말들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은 소통을 모른다고 맹비난하면서 자신들이 대변한다고 생각하는 대중들과 소통이 안되는 말을 하면서 그런 줄도 모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과 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이 소통의 첫걸음이라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Posted by 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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