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불우이웃돕기 모금운동이 연례행사로 계속된다. 세상에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참 많다. 나쁜 사람들도 많지만. 이건 정말 중요한 거다. 이런 선의가 현실의 모순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희망이니까.

그런데 이것은 역으로 국가란 것이 얼마나 한심한 지를 보여주는 거울이다. 이렇게 잘 살면서도 불우이웃문제를 국민에게 맡기다니. 이렇게 뻔뻔하다니. 개인의 선행이 넘치는 사회는 국가가 해야 할 일을 그만큼 안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물론 자기 밖에 모르고 사는 세상에서 타인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은 더없이 귀하고 소중한 것이다. 해서 그런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어떤 말도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선한 마음에서 나온 개인의 자선 행위가 사회적으로는 그 개인의 본의와는 전혀 무관하게 부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 측면도 있음을 주목할 필요는 있다.

비록 불우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일지라도 그것이 자선의 범주를 넘지 못하면 본의 아닌 싸구려 동정심의 발로가 되거나 위선이 되어버릴 수 있다. 불우한 사람들을 위한 예산을 냉혹하게 칼질해버린 기득권 정치세력을 정면으로 겨냥하지는 않고 불우이웃 돕기 성금 모금운동이나 펼치는 공영방송의 작태가 대표적인 케이스로 이런 모습은 정말 역겹고 가소로울 뿐이다. 서푼어치 봉사와 기부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들먹이는 일부 자본가나 부유층의 자선운동도 마찬가지다.

불우 이웃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불우 이웃돕기라는 자선의 범주를 넘어 불우 이웃을 낳는 자본주의에 이르러야 비로소 빛날 수 있다. 불우한 환경에서 사는 이웃을 외면하지 않고 그들에게 조그만 힘이라도 되어주겠다는 따뜻한 마음을 자본주의라는 야만의 구조악을 꿰뚫고 그에 맞서는 사회적 연대의 큰 동력으로 만들어 내야할 책임은 물론 반자본주의 정치세력에 있다.

보수진영의 위선만 문제인 것도 아니다. 자본주의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인식이 없거나 자본주의 자체는 문제 없다는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 혹은 자본주의가 문제이기는 하지만 대안 없다는 핑계로 자본주의의 온갖 구체악만 물고늘어지는 소위 진보 개혁 세력도 위선적이기는 마찬 가지다.

몸통은 덮어둔 채 깃털만 건드리는 검찰의 수사가 비웃음의 대상이듯  야만적 자본주의 자체는 덮어둔 채 약육강식 승자독식 적자생존의 체제인 자본주의가 초래하는 구체악만 문제삼는 것도 마찬가지다.

비록 대안에 대해 자신이 없어도 자본주의가 문제라면 자본주의를 문제 삼아야 하는 것 아닌가?

 

Posted by 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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