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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차 희망버스가 부산으로 달려간다.

부산의 한진 중공업 노동자들을 만나러 간다.

고공크레인 농성 185일째를 맞이하는 김진숙을 만나러 간다.

가해자든 피해자든 인간은 참으로 모질구나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하는 상황이 불러낸 게 희망버스다.

1차엔 17대의 버스에 700명 정도가 함께 탔다고 한다. 이것도 사고라면 사고다.

한 시인의 호소에 공감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했으니 어찌 사고라 하지 않으랴.

2차엔 1857,400명이라 한다.

185대인가? 처음에는 아리송했다. 79일이면 김진숙의 농성 185일째. , 틀림없이 맞어. 그래서 185대구나.

참으로 황당한 사람들이다. 17대의 10배가 넘는 사람들을 부산으로 모이게 하겠다고?

농성 185일째라는 사실에서 시인이나 떠올렸을슴직한 계획을 실제로 추진하다니!

그래서 2차 희망버스는 그 자체로 이미 대형사고다.

 

이른 저녁 6, 185대의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역에 몰려들 사람들,

이들이 연출할 그림은 어떤 것일까?

부산역 일대가 완전 마비되지 않을까?

부산역에서 집회를 마친 수천 수만의 사람들이 영도에 있는 한진중공업으로 행진하면 부산시내 교통이 마비되지 않을까.

영도다리가 맥없이 바다로 내려앉는 사태가 일어나는 건 아닌가?

희망버스에 공감해서 행진 대열에 참여하거나 마비된 교통 때문에 본의아니게 거리로 나온 부산시민이 7,400명의 10배가 되는 74,000명을 넘어서면 어찌될까?

사람들을 온통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사람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항구도시 부산이 들썩거릴 것 아닌가?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의 부산시민.

19791018, 18년 박정희 철권독재를 한방에 날려버린 부산시민은 그냥 시민이 아니다. 마산시민과 함께 민주혁명시민이다.

고달프고 절망적인 현실이지만 그 때를 자부심으로 기억하고 있는 부산시민들이 희망의 버스를 외면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버스는 모든 정리해고와 비정규직화에 반대하고, 그 누구의 삶이든 조금은 더 안전한 사회를 우리 스스로가 주체가 되어 만들자는 연대의 버스, 실천의 버스입니다. 왜 모두가 연대해서 생산하는 사회적 가치가 소수 자본가들의 금고로만 들어가야 하는지를 질문하는 버스입니다.

그래서 이 버스는 한국 사회의 새로운 변화를 염원하는 희망의 버스이기도 합니다. 누가 얼굴내밀자고 가는 버스도 아니고, 누굴 영웅으로 만들자고 가는 버스도 아닙니다. 모두가 평등하고 평화로워야 한다는 가장 단순한 진실들이 맑고 투명해지기를 바라는 버스입니다. 너무나 평화로운 버스이고, 너무나 소박한 버스이고, 너무나 아름다운 버스입니다

..........다른 세상으로 이제 우리 출발합시다. 이제 한진중공업의 저 소통 부재의 낮은 담이 아니라, 행복에 겨운 소수들을 위해 평범한 다수가 고통의 바다 속에서 살아야만 하는 이 잘못된 장벽을 넘읍시다 ”(송경동 시인)

 

희망버스를 타고온 사람들이 부산역을 마비시키고 부산영도일대의 교통을 마비시키는 그림도 나에게는 유쾌한 상상이다.

하지만 이런 상상하고는 비교도 안될 더 중요한 상상이 있다.

선거로는 도저히 기대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이는 위대한 심판의 물결이 희망버스로부터 번져나가는 상상이다.

 

용산,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삼성, 유성기업에서 우리가 본 것은 무엇인가?

자본가들은 이익추구에만 몰두하는 탐욕의 화신을 넘어 죽음을 부르는 저승사자가 되기를 서슴지 않고 있다.

돈으로 용역을 고용해 아무 방비도 없는 노동자의 머리를 쇠파이프로 내리쳐 두개골을 깨버리게 하는 자본가(유성기업),

맷값이라고 돈 2,000만원 던져 주며 야구방망이로 10여차례나 노동자를  제손으로 패는 자본가(SK그룹 최태원 회장의 사촌동생 최철원),

자본가들의 이런 모습은 극단적인 예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제풀에 꺾여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만드는 자본가도 교활할 뿐 본질적 잔인성은 다를 바 없다.

자본가를 언제나 일방적으로 편드는 정권도 야만적이라는 점에서는 조금도 이들 자본가들에 뒤지지 않는다.

자본가와 함께 이 권력집단을 세상에서 말끔이 씻어내지 않고 우리가 마주한 이 고통이, 이 슬품이, 이 절망이, 이 좌절이, 이 분노가 어떻게 풀릴 수 있단 말인가?

 

하여 나는 79일 창원에서 출발하는 희망의 버스를 탈 것이다. 대학을 1년만에 중퇴하고 20대 백수대열에 참여한 내 막내아들의 손을 잡고.

 

 

 

 

 

 

Posted by 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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