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은 자연계의 절대 법칙이 아니다-

 

 

내가 어느 책에서인가 읽은 적이 있는 재미있는 예기 하나.

 

서양사람들이 아메리카 인디언 부족을 찾아가서 IQ 테스트를 했다.

서양사람들은 부족원들 각각에게 테스트 용지를 하나씩 나눠주면서 각자가 개별적으로 문제의 해답을 작성해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인디언 부족사람들이 IQ 문제들을 풀기 위해 모여서 함께 토론을 하고 있었다.

다가가서, IQ 문제는 각자가 따로 문제를 풀어와야 한다고 거듭 얘기했다.

그랬더니 부족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얘기한다.

문제가 있으면 함께 의논해서 해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왜 자꾸 각자가 따로 해결하라고 하는지 모르겠군요.’

인디언들에게는 문제를 각자가 따로 해결한다는 자체가 전혀 생소한 상황이었던 것

 

우리 나라 사람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함께 의논해서 해결하면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서로 의논하면서 하지 않고 남이 볼까봐 거리를 두고 앉아 교사의 감독까지 받으면서 시험을 보는 우리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경쟁을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우리들에게는 삶이 곧 경쟁이니까. 경쟁하면서 살아야 하는 현실이 힘들지만 경쟁하는 삶에 너무 익숙해서, 그리고 경쟁없는 세상을 모르기도 하기 때문에 경쟁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며 산다.

성적경쟁, 입시경쟁, 취업경쟁, 승진경쟁, 돈벌이 경쟁, 자리경쟁, 이렇게 경쟁으로 점철된 삶이 우리네 삶이다. 인디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삶이 우리들의 삶이다!

그런데 인디언처럼 경쟁을 회피하고 협력하면서 공존하는 자연계 생물들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도 하나 소개할까 한다.

서경대학교 생물공학과 조홍범 교수가 생태주의 건축과 환경 1”에 발표한 생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에서 발췌한 내용.

 

자연의 생태학적 현상중에서 가장 설명하기 곤란하고 논란의 여지가 많은 현상이 경쟁인 것은 사실이지만, 단언하건데 자연에서는 자기만의 고유한 생태적 지위를 가지거나, 협동하는 생물만이 살아남는다.

 

생물들의 다양한 경쟁회피 메카니즘(기작)

 

자연에서 생물은 불필요한 경쟁을 회피하는 다양하고 능동적인 메카니즘을 가지고 있다. 그 중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각자 고유한 생태적 지위(ecological niche)'를 가지는 것이다.

실제로 동일한 서식처의 유사종들 사이에 동일한 생태적 지위를 가지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13종의 갈라파고스 핀치새는 서로 먹이 선호도를 달리함으로써 경쟁을 회피하며, 먹이 선호도와 부합하는 각기 다른 형태의 부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다. 메기나 송어처럼 동일한 먹이사슬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서식처를 공간적으로 분할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동일한 서식처에 먹이 선호도가 같은 동물들 사이에도 나방과 나비, 조류와 박쥐처럼 동일 서식처를 시간적으로 분할함(낮과 밤)으로써 효율적으로 경쟁을 회피하는 경우도 있다.

 

한편 크기와 모양, 먹이 선호도조차 동일한 다섯 종류의 솔새들이 어떻게 가문비나무 숲에서 함께 서식할 수 있는지를 관찰한 메카서(R. MacArther)의 고전적 연구에 의하면, 서로 다른 높이에서 먹이를 찾으며 각기 숲을 관통하는 방향이나 활동영역을 달리할 뿐 아니라 각기 산란의 시기도 달리함으로써 생태적 지위를 미묘하게 조정하고 있음을 보고하고 있다.

 

자연의 세계를 자세히 관찰해 보면 천상천하 유아독존적 생물은 없다. 지금까지 발견된 어떤 생물도 자기 홀로 존재하는 생물은 없다는 것이다. 최소 한 종 이상의 다른 생물들과 협동하고 있다는 뜻인데, 협동의 종류와 방법은 서식처 제공, 먹이 공급, 번식 및 이동수단, 보호와 경보수단, 치료와 청소 등 실로 다양하여 그 예를 일일이 언급하는 것 조차 벅찰 지경이다.

 

동물의 곪은 상처에서 부화한 청파리와 검정파리의 애벌레는 고름을 먹고 자라면서 상처부위의 조직을 처리하며, 이들이 내놓는 배설물은 살균작용을 가진다고 하니 별의별 참혹한 협동관계도 다 있다.

 

이상에서 고찰한 바와 같이 생태학에서 가장 철저히 증명되었던 원리 중 하나인 가우스의 원리’(두 종의 생물이 똑같은 생태적 지위를 누리는 경우는 결코 없다)나 포식과 피식의 생태적 의미를 재조명한 저명한 생태학자 오덤(Eugene Odum)의 생태학적 통찰 등 다양한 생태학적 연구를 종합하면, 자연은 경쟁적 투쟁을 회피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절되어 있으며, 투쟁이 아니라 평화로운 공존이 자연계의 법칙이란 사실이다. 콜린버(Paul Colinvaux)는 결론적으로 적자(fit animal)란 싸움을 잘하는 동물이 아니라 언제든지 싸움을 회피하는 동물이라고 간결히 표현한 바 있지만, 싸움을 회피할 뿐 아니라 자기와 상반된 힘을 가진 자와 협동하는 생물이 자연계의 진정한 적자라 할 수 있겠다.

 

시골에 가면 어디서든 소를 만난다. 우직하고 강력한 추진력의 상징동물인 소의 생존을 좌우하는 것은 우습게도 세균이다. 소는 초식동물이지만, 식물의 주요 에너지 저장물질인 섬유소를 분해하는 능력은 없다. 섬유소를 포도당으로 분해하여 소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역할은 소의 혹위에 살고 있는 섬유소 분해세균(cellulolytic bacteria)이 담당한다. 소는 세균에게 안정된 서식처를 마련해주고, 세균은 소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협동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소와 세균의 협동관계가 깨어지는 순간 소는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악어새와 악어, 뿌리혹박테리아와 콩과식물 등에서도 이와같은 협동을 통한 공생관계를 발견할 수 있다.

자연에 나가 조금만 주의깊게 관찰을 해보면,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생물들은 서로 경쟁을 회피하며, 오히려 상반된 힘을 가진 자와 협동을 하면서, 환경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적자생존, 약육강식을 자연의 절대법칙이라고 의심없이 믿어왔던 우리들에게 이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이다. 환경에 적응 못하는 종은 도태되고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잡아먹는 현상만 자연계의 진실인 것이 아니고, 서로 경쟁을 회피하고 협동하면서 공존하는 현상도 자연계의 진실이라는 새로운 사실이 인간에게 큰 깨우침을 주고 있다. 인디언의 삶이 자연이 가르치는 그대로의 삶이고 요즘 기업세계에서 말하는 불루오션’(경쟁이 없는 새로운 시장)도 자연의 이런 가르침에 부합되는 것이다.

다시 조홍범교수의 결론이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교훈은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으로 압축되는 경쟁의 논리가 아니고, 오히려 경쟁을 회피하는 자기만의 고유한 생태적 지위를 갖거나 상반된 힘을 가진자와의 협동의 논리이다.

남들과 경쟁하지 않고, 서로 협동하면서 사는 것, 이미 누군가 선점하고 있는 좁은 생태적 지위를 탐하여 경쟁하지 말고, 자신만의 고유한 생태적 지위를 만들어 가는 창의적 삶을 사는 것, 이것이 자연에 순응하는 삶이다“.

 

 

 

 

 

Posted by 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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