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진보와 개혁

 

진보와 개혁을 자임하고 외치기만 한다고 진보주의자, 개혁주의자가 되는 건 아니다.

반한나라 민주대연합을 외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를 위한 연합’이라는 말에서 어떤 감동도 느끼지 못한다.

감동은커녕 이런 정치공학적 단순 논리로 민주주의를 지키거나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상투성이 이제 지겹다.

민주주의적 가치와 정책을 중심으로 한 연합이라 해도 사정은 별 다르지 않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후보로 ‘야권후보 단일화’를 이룰 경우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이길 수 있는 곳이 늘어나겠지만 전체적으로 한나라당에 패배를 안겨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이와함께 잊지말아야 할 것은 민주당을 제외한 야권정당들의 많은 정치지망생들이 선거에서 뛰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벌써 출마를 선언하고 선거운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예비후보들도 있는 데 이들이 출마를 못하게 되어 본의 아니게 실없는 사람이 될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민주주의란 대의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희생이라 할 것인가?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한나라당에 맞서 연합하자는 주장을 펼려면 최선의 방법이 뭔지부터 생각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안되는 일을 꺼내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며 후보단일화 같은 방법만 외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소수를 배제하고 야권내 기득권 정당에게 이익을 몰아주는 결과를 낳을 방법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주장하는 것은 모순이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사장시키거나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문제에서 드러나는 한나라당의 독선과 독주도 문제지만 이런 독선과 독주를 가능하게 하는 정치관계법에 더 주목해야 한다.

의원 선거에서 지역구와 비례대표 투표가 따로 있지만 비례대표는 수가 턱없이 적다. 독일식 정당명부비례대표제(지역구와 비례대표가 반반임)를 도입하면 지역구 당선자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유권자의 표도 정당이 차지할 의석에 반영되므로써 사표가 생기지 않는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가 사장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후보단일화란 명분에 밀려 정치지망생이 본의 아니게 선거를 구경만 하고 있어야 하는 비민주도 없다. 이게 진정한 정치적 민주주의다.

기초단체장까지 다 하는 것이 어렵다면 광역단체장만이라도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러면 모든 당의 후보가 아무 제약없이 출마하고 결선에서 여권과 야권이 일대일로 승자를 가리게 되어 야권후보 단일화는 저절로 이루어진다 .

이런 방법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반대할 것이므로 안되는 일이라며 비현실적인 주장으로 간단히 묵살해버리는 분위기다.

잘못된 것, 낡은 것을 고치고 바로 잡아 나아지게 하는 것이 개혁이고 진보라면 그것을 위해 싸워야 할 일이지 미리 포기하는 것이 옳다는 말인가?

민주주의를 위한 반한나라 연합의 중심이 될 민주당도 이런 방향의 선거제도 개혁에 대해 한나라당과 마찬가지로 반대하기 때문에 민주주의 진전을 위해 결정적으로 중요한 선거제도 개혁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반한나라 선거연합’이 아니라 ‘반기득권 선거제도개혁연합’이다.

위에서 말한 방향으로 선거제도가 개혁되면 각 정당들이 자유롭게 선거에 임하면서도 한나라당 독식을 막을 수 있고 호남에서의 민주당 독식도 깨뜨릴 수 있는 일거삼득의 효과가 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선거제도 개혁을 거부하는 민주당을 반한나라 민주연합의 중심이 되게하는 웃기는 일을 이제 그만 해야 한다. 선거제도 개혁에 적극성을 띄지 않는 민주당이라면 민주연합의 중심이 아니라 한나라당과 함께 반기득권 연합의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거대 양당구조를 고착시키는 기존의 선거제도를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선거연합만 외치는 것은 개혁도 진보도 민주주의도 아니다.

Posted by 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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