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정치학 

모택동은 정권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정권은 표에서 나온다. 그래서 표를 얻기위해 각 정치세력은 사력을 다 한다. 표를 얻는 노력은 말을 통해 이루어진다. ‘우리가 남이냐’(한나라당)며 꼬시든, ‘50년 묵은 삼결살 불판은 갈아야 한다’(노회찬)고 하든, 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말이 표로 연결된다. 대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대중이 알아들을 수 있고, 감동할 수 있는 말로 소통하겠다는 생각이 철저하지 못하면 성공하지 못한다. 말은 우선 쉬워야 하고, 대중들이 생활속에서 즐겨쓰는 말이어야 하며 정확해야 한다. 영어, 한자말, 현학적인 말은 삼가는 것이 좋다. 그리고 아주 중요하지만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게 있는 데 정확하고, 적확한 표현에 관한 것이다. 대충 뜻만 통하면 되지 까칠할 필요 있느냐는 안일한 자세는 말로 점수 딸 수 있는 자세가 아니다. 불필요한 수식어 한정어는 위험하다. 밀실야합 노동법 반대. 졸속처리 교육법 반대. 밀실야합이나 졸속처리라는 수식어를 붙여 공격하면 문제되는 법을 통과시킨 방법에 무게 중심이 실리면서 법자체의 문제점에 대한 공격이 둔화될 수 있다.

바른 언론, 참교육 같은 화법도 문제다, 세상에 바른 언론, 참교육은 없다. 계급사회에서는 이해가 충돌할 뿐만아니라 가치관, 사상, 이념, 판단이나 평가의 기준도 충돌하기 때문에 ‘바른’이니 ‘참’이니 하는 주관적인 말은 의미가 없다. 흔히 말하는 대로 보수언론 진보언론이 있고, 자본주의체제에 순응적인 교육과 그렇지 않은 교육이 있을 뿐이다.

정권에 대해서도 무능한 정권이니 실패한 정권이니 하는 표현은 정권의 계급적 성격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적절한 표현은 아니다.

잘못된 정책이라는 공격도 무디기는 마찬가지다. ‘농정 잘못 농가부채, 정부가 책임져라’고 하면 정부에 대한 공격으로서 모자람이 없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그렇지 않다. 농민들이 어려위진 것은 농정 잘 못 때문이 아니고, 농민수탈정책 때문이다.

그게 그거 아니냐고?

우리나라 농정은 농업의 희생위에 공업화를 하겠다는 국가의 전략에 따라 규정된 농정이다. 농업을 살리려 했으나 농정 당국이 정책을 잘 못해서 그리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식량은 전자 제품 팔아서 사다 먹으면 된다며 장기적 관점에서는 농업포기정책을 쓰는 것이 좋다(박용성 전 두산회장)고 말한 한 자본가의 말은 개인의 생각일 뿐아니라 역대정부의 생각이기도 했다. 그래서 농정잘못 대신 농민수탈 농정, 농업포기 농정이라고 해야 적확한 표현이 되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가 계급의 이해와 가치를 대변하는 제도 정책 교육 언론이 있고, 그 반대인 것이 있을 뿐이다. 중간은 없다. 사상, 이념, 가치관, 제도, 정책, 도덕, 규범의 당파성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고 판단해야 되는 이유다.

 

 

말 좀 알아듣게 합시다(2008-3-19 진보신당 당원게시판에 올린 글) 

노무현 정권이 들어선 후 참 이상하다고 느낀 게 하나 있다. 
고등학교가 최종학력인 사람이 대통령되었다고 이제 평범한 사람들도 어깨펴고 사는 세상 되지 않겠나 하는 기대들이 있었다. 
그런데 내 기억으로는 새 정권 들어선 후 노무현 정권에서 만큼 알아듣기 어려운 요상한 영어 많이 쓰는 것 본적 없다.  
무슨 무슨 태스크 포스팀을 꾸리고 무슨무슨 로드맵을 어쩌고 저쩌고.....  

민중의 벗들은 다를까?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아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뉴스클리핑, live poll, ucc극장, member login(진보신당연대회의 홈페이지)  

이런 말들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까?  

진보를 말하고 민중을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보다 대중의 빈곤과 소외에 대하여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대중의 마음을 읽는데 있어서 남다를까? 그렇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남들은 다 아는 데 나만 알아듣지 못하나 보다 "하고 느끼는 사람들의 마음이 어떨까?  

라디오 티비 신문에 나오는 말들 중에 알아먹을 수 없는 말들이 하도 많아 수시로 네이버의 신세를 지며 산다.

나는 명색이 대학출신이다. 

이런 나도 알아먹지 못하는 말들이 춤추는 세상에서 낫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사람들, 아니 가방끈이 짧은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이 어떨까를 생각하면 정말 화가난다.  

평등세상 만드는 거야 잘나가는 사람들 때문에 어려운 일이지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하고 살자는 거야 뭐 그렇게 대놓고 반대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나?  

남의 나라말 내나라 말 쓰듯 하는 것만이 문제 아니다.  

반신자유주의  

아무렇지도 않은듯, 이것 모르면 바보라는 듯, 신자유주의 때문에 농민 노동자 서민 죽게되었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써대는 이 말,  

소위 이 땅의 민중들 중에 신자유주의가 뭔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미FTA 반대,

  에프티이에이가 뭐지,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다면 무식하다고 비웃겠는가?  

한미간 불공정무역협정반대,  

이렇게 하면 안되나?  

최고위원회  

이 이름에서 오는 느낌이 어떤가?  

남이 너무 알아주지 않는 세월을 살아와서 스스로라도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행세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소위 보수정당 사람들이 그렇게 쓰니까 우리도 격을 맞추기 위해 그리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인가?  

서민, 민중, 대중  

이런 말을 전매특허처럼 쓰는 우리의 의식 속에는 서민 ,민중, 대중과 우리를 갈라놓는 우월의식이 부지불식간에 생겨나 굳어 있는 것은 아닌가?(당기구 명칭 정할 때 조심 좀 했으면 ..) 

눈만 뜨면 만나는 동지들, 우리들에겐 그 어떤 재물보다 소중하고 반가운 존재들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동지들만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어제 까지는 얼굴도 몰랐던 새로운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새로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두주먹불끈 쥐고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인간해방 노동해방의 길로 한평생 나갈 결의를 다진 사람들일까?  

지금 이 순간 까지 온갖 고생 감내하며 어깨걸고 달려나온 우리들 끼리 그간의 역정과 우리들의 미래를 떠올리며 눈시울 붉히는 감회와 감격의 순간에 우리곁에 다가온 사람들은 얼굴 돌려버리지 않을까?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하지만 그들의 정권 아래서는 요원한 일이다.  

살기 어려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은 지금도 있다.  

굶는 사람도 있다.  

아파도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국가가 정책적으로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될 일이라고만 떠들게 아니라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데서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연대기금은 정규직노동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진보정당 당원들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이 땅 모든 선량한 사람들 사이로 확산시켜야할 일이다.  

그들, 우리가 밤낮 보수 수구라고 공격해대는 그들은 자신들만의 자본주의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민중을 경멸하고 조롱하고 농락하면서도 민중의 지지를 독차지 한다.  

민중과 소통하는 법을 알고 자신들의 진심과 무관하게 민중의 눈높이에 맞춰 말하고 처신할 줄 아는 그들의 모습에서 위선을 볼(공격 본능의 우리는 보통 그렇지 않은가)게 아니라 교훈을 얻어야 하지 않을까?  

정치는 먹고사는 문제다, 등따시고 배부르게 하는 게 정치다.  

그들이 정치에 대해서 풀이 하는 식이다.  

그들의 모습은 비장한 얼굴로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지사나 산자여 따르라를 외치는 해방투쟁 전사의 모습도 아니다.  

돈많고 지체도 높으면서 인심좋고 겸손한 그래서 부담없이 가까이 할 수 있는 이웃사촌의 모습이다.  

이런 식으로 해서 그들은 우리의 민중을 뺏아간다.  

진보의 혁신, 재구성 당연히 해야한다.  

흔히 말하는 대로 인적쇄신, 제도적 쇄신 당연하다.  

하지만 우리 안의 낡은 요소(특히 시공을 초월하는 운동권 냄새, 우리의 생각과 마음가짐, 태도에 자리잡고 있는지도 모르는 선민의식 비슷한 것), 상투적인 것, 진부한 것, 무언가 경직된 것, 평등을 외치면서도 내부에서는 그것의 구현을 외면하는 것(정액제 당비 대신 소득 재산 대비 정률제 당비가 타당하지 않을까), 익숙한 물에서만 놀려고 하는 관성 등등과 과감히 결별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의 고생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공공부문선진화 반대!’ ?(2009-12-18) 

금속노조 경남지부가 12월 17일자 경남도민일보에 낸 광고 문구다.

일반인들이 이런 주장을 보고 어떤 태도를 보일까. 선진화는 역대 보수정권이 하도 많이 쓴 말이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말 자체가 의미하는 것은 좋게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런 선진화를 반대한다?

그럼 공공부문을 후진화하자는 말인가? 공공부문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 

공공부문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여러 가지를 진행시키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사유화와 인원감축 및 임금 삭감이다. 총 305개 공기업과 공기업 출자회사에서 2만 2,000명을 감축하고 대신 1만2186명의 청년인턴을 고용한다. 사유화(정부표현은 민영화) 대상 24곳 중 70% 이상 이미 의결 완료. 대졸 초임 연봉 2000만원 이상인 267개 공공기관 전체가 인하방침 결정.
한국전력은 2420명의 인력을 줄여 지난 해 말 대비 직원 수가 11.1% 감소.
이상이 공기업선진화 방안의 골자다. 노조가 반대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제 코가 석자인지라 공기업에서 쫓겨나거나 임금을 삭감당하는 노동자들의 문제에 관심가질 여유가 없다. 공기업이 헐값에 매각되어도 정부가 하는 일을 어쩌겠는가 하는 정도일 거다. 그러니 공기업 사유화문제가 아주 중요한 문제이고 해당 기업 종사자들이 힘겹게 싸워도 사유화는 계속되어 왔다. 은행을 국유화해야 된다는 소리가 미국에서 터져나오는 상황임에도 한국에서는 그나마 있던 공기업마저 민간기업에 팔아넘기고 있다. 그리고 공기업의 매각 문제는 그 공기업 종사자들만의 문제, 고작해야 민주노총의 문제인양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공공부문 선진화라는 이름으로 감원과 감봉 사유화를 착착 진행시키고 있는

이명박정부에 맞서 싸울려면 선진화란 것의 허울을 벗기는 일부터 해야 한다. 간단 명료하게, ‘공기업 사유화반대. 공기업매각 반대.’

정부는 4대강 살리기라 하지만 이 사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4대강 죽이기라고 부르듯 정부가 하는 짓의 실체 내지는 실상이 그대로 드러나게 하는 작명이 중요하다. 정명(正名), 즉 사물의 이름을 정확하게 짓는 것이 정치의 요체라고 한 공자의 말은 싸움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말이다.

대중의 지지가 있어도 막가는 정부가 자행하는 말도 안되는 짓거리들을 막아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하물며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소통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는 내 식으로말한다. 이해는 니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일관해서는 지지는커녕 빈축만 살 것이다.

 

Posted by 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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