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적 항구적 민생안정은 ‘개인의 기본적인 삶을 보장하는 사회보장제 국가’ 건설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개인의 의 식 주 의료 교육 고용을 국가가 책임지고 보장하면 모든 국민의 생활상의 불안과 근심 걱정은 사라진다. 삶이 불안하고 근심 걱정이 떠날 날 없는 대다수 국민들의 처지에서 보면 이것은 혁명적 발상이다.
하지만 이것은 실현불가능한 공상은 아니다. 한국의 경제력은 이것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기 때문이다. 모든 국민이 함께 땀흘려 이룬 결과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사회적 합의인 데 이것 또한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국민들 사이에 보편화되어 있는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걸림돌이 있긴 하지만 이것 또한 난공불락은 아니다. 물론 이 걸림돌을 치우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많은 것을 포기하거나 양보할 수 밖에 없는 자본가들은 물론이고, 자본주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며 거기에 맞춰 살아온 사람들도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가 보장하는 사회보장제가 우리 사회의 난제들을 푸는 열쇠’임에 틀림없지만 저항 또한 만만치 않을 것은 분명하다. 자본주의를 영원불멸의 유일체제로 믿고 있는 원초적 자본주의 신봉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자유 민주주의자, 자유주의적 개혁주의자, 인도주의자들과도 싸워야 할 것이다. 자본주의 신봉자들은 자본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발상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고 후자들은 이들과는 다르겠지만 그들 또한 각기 다른 반대 이유가 있다. 사회주의는 이미 실패했는 데 그 실패한 사회주의의 핵심적 정책이 통하겠느냐,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로 진화할 가능성이 있겠느냐, 물적토대가 갖추어져 있느냐 등등 참으로 많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대부분의 사회적 난제들은 자본주의의 틀을 건드리지 않고서는 해법을 찾기 어렵다.

입시경쟁, 대학등록금, 사교육비 문제로 대표되는 교육문제는 자본주의적 가치, 원리와 연결되어 있다. 성공=돈= 대기업취직 = 명문대 입학이라는 자본주의적 등식은 그대로 둔채 교육문제를 풀겠다고 나서는 것은 사기다. 돈이 단지 교환의 매개물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으로 자리매김 될 때, 학력이나 학벌에 따른 인간적, 경제적 차별이 사라질 때 비로소 위의 자본주의적 등식은 깨어지고 교육문제가 순수 교육적 차원의 문제(주입식 암기위주의 교육이냐, 자기주도적 창의적 문제해결력 중심의 교육이냐 등)로 남는 것이 가능해진다.

빈부격차 또한 고용문제와 함께 일상적이고 심각한 사회문제지만 완화되기는커녕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이윤추구가 동력인 자본주의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작동한 결과물이 빈부격차이고 양극화(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서울과 지방간, 도시와 농촌간 등등의 격차)이며 비정규직양산과 고용불안이다.

쌍용차 사태나 용산참사, 4대강 사업이나 세종시 문제도 근원을 추적해보면 결국 자본주의의 문제다. 자본주의는 손댈 수 없다는 입장에 서서 자본주의적 병리의 치유방법을 찾으려 해봤자 헛수고만 할 뿐이다.

자본주의가 성역이 될 수 없다는 생각, 사회주의적 발상과 상상력에도 울타리를 치지 않는 열린 정신, 이것들 없이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사회문제들에 도전할 수 없다.

개개인의 삶을 국가가 책임져 주면 실업이나 정규직 비정규직간의 차별을 감내하기가 훨씬 용이해질 것이다. 대학 혹은 명문대학을 가기 위해 지금처럼 경쟁할 이유도 없어질 것이다. 당연히 사교육비 때문에 허리가 휜다는 아우성도 사라질 것이다. 돈 때문에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도 없어질 것이고, 돌볼 사람없는 노인들도 고독과 외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사회는 한층 여유로워질 것이다.

불안 근심 걱정이 사라지고, 고생스럽게 일하지 않아도 살 수 있게 되면 심신이 편안하고 건강해져 병원에 갈 일이 자연히 줄어들 고 국가적 차원의 의료비 부담도 점진적으로 줄어들것이다.

기본적인 삶이 보장되는데 공부하기 싫은 사람까지 대학에 목맬 이유는 없다. 따라서 대학교육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 것이고 국가적 차원의 교육비 부담도 당연히 줄어들 것이다.

생존의 문제를 100% 개인의 책임에 맡길 경우에는 노사간 갈등을 위시한 사회적 갈등과 대결이 일상화된다. 우리가 보아왔고 지금도 보고 있는 것처럼. 하지만 개인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가 책임져 주면 이런 갈등과 대결은 소멸하거나 완화된다. 사회적 비용은 줄어들고 생산성과 능률은 증대된다. 인간관계에도 변화가 온다. 경쟁적, 적대적 관계가 협력적, 우호적 관계로 발전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기 때문이다.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반목, 시기와 증오, 대결과 투쟁이 없어지거나 완화되면서 사회가 안정된다. 거품을 물고 비난해야 할 대상이 줄어들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에 골몰해야 할 필요도 없어진다. 돈, 출세, 비싼 집, 비싼 차.......등등 끝없는 탐욕과 욕망 대신 자신만의 행복 비결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햇볕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철학자 디오게네스 처럼.
돈이 위력을 상실하면서 그 자리를 인간적이고 인격적인 덕목, 고차원적인 가치가 대신할 것이다. 돈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집착은 돈이 갖고 있는 현실적 힘 때문인데, 돈 없어도 사는 게 걱정없는 세상이 되면 돈을 둘러싼 온갖 악행과 부정적 현상들이 없어지거나 줄어들 것이다. 인신매매, 유괴, 강도, 사기, 절도, 사채놀이, 투기, 매점매석, 직장폐쇄, 파업, 뇌물, 매관매직, 유해식품제조, 비관자살 같은 것은 다 돈과 관련되어 있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다. 이 어두운 그림자에 대해서는 개인의 마음씨나 도덕관념보다 자본주의가 더 책임이 크다.

‘국가에 의한 개인의 삶 보장’을 위해서는 재산이나 소득의 재분배가 필요하고 이것은 부유층의 반발, 저항을 초래하겠지만 이런 반발과 저항은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물리쳐야 할 대상이다. 대중의 힘을 동원할 수만 있다면 능히 가능한 일이다.

이것을 해내는 것이 진보정치다.

Posted by 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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