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집 배달 일을 해서 번 돈 135만원 중 50만원을 고아원  등에 성금으로 내고 있다는 한 청년의 이야기로 우리 가족은  2009년을 마감했다. 
점심 한끼는 라면으로  때우면서 어린 시절의 자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이들을 위해 이런 일을 하는 청년에 관한 이야기를 접하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자기 할 짓 다하면서 타인과 아픔을 나눈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앞으로는 나의 필요를 줄여  다급한 사람들을 위한 십시일반에 함께 하자.
어려운 사람들의 문제는 자선으로 접근해서 될 문제가 아니라는 이유로, 자선이 필요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해결되는 문제라는 생각으로 큰 틀에서 세상을 바꾸는 일만 생각 했다. 하지만 갈수록 나빠지고 있는 세상은 이런 나의 생각을 조롱하고 있다.
여태까지의 생각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 청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세상을 바꾼다는 것은 어쩌면 몽상일지 모른다.
아니 세상을 바꾸는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도처에 널려 있는 아픔들을 만나야 한다. 어려운 사람들이 자신들을 그런 지경으로 내모는 자본주의에 순응하고, 그런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정당들의 변함없는 지지세력이라는 역설의 벽앞에서 수없이 깨지고 절망해왔지만 그래도 그들의 곁에 있어야 한다.

새해 첫 날이다. 정말 밝은 이야기, 가벼운 이야기로 새해를 시작하고 싶다.
나의 존재 자체가 내 주변 가까운 사람들에게 민폐라는 생각 때문에 밝고 가벼운 이야기를 선물하고 싶다는 내 마음은 사실 절실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나의 절실하지만 소박한 바램은 그야말로 희망사항이 되고 만다.

어제  도민일보에 보낸 글에서 ‘제발 사람 좀 죽이지 마라’고 외쳤던 나를 비웃듯 오늘,새해 첫날 아침 눈을 뜬 내 앞에 또 자살 소식이 기다리고 있다.

1일 오전 4시30분께 강원 춘천시 석사동의 한 원룸에서 김모(30.여) 씨가 숯불을 피워 놓고 숨져 있는 것을 남편 장모(36) 씨가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카드빚 문제 등으로 남편과 말다툼을 벌였다는  이 여인은 "나를 살리려고 하지마라"는 요지의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남편에게 남기고 자살했다 (연합통신) .
 
새해라고 사람들은 떠오르는 해를 보고 소원을 빌고 건강을 빌었다는 데 나에게는 무언가를 빈다는 말이 언제나처럼 낯설기만 하다. 가족의 건강을 빌고 경제가 풀리기를 비는 사람들 뒤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 없이 넘나들고 있을 또다른 누군가가  떠오른다.

도대체 정치란 무엇이며, 사랑과 자비는 무엇인가?
정의는 무엇이고 도덕은 또 뭐란 말인가?
정치인 공무원 성직자 학자 교사 변호사 언론인 예술인은 무엇이며 노동자 농업인 어업인은 무엇인가?

생활고, 산재, 교통사고, 질병, 사건 등으로 연간 수만의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만 세상은 그런 죽음 정도야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  수를 해마다 늘리고 있다.
산 사람이 이렇게 죽음으로 내몰리는 한 편에서 출산률 저하를 걱정하며 온갖 출산장려 정책을 쏟아내는 이율배반은 또 뭐란 말인가? 

우리 사회가 삭막하고 살벌하기까지 한 사회, 정말 황폐화된 사회라는 인식은 이제 상식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선행이 끊이지 않고, 불우이웃돕기 운동이 계속되는 것도 우리 사회가 이렇게 비정한 사회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연말이면 어김없이 거리에서 구세군 남비를 만나고,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낸 따뜻한 사람들을 만난다.

자선은 아름답고 따뜻한 마음의 발로이지만 ‘자선이 필요한 사회, 자선을 권하고 장려하는 사회는 비겁한 사회’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가난은 나라도 못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은 나라만이 구할 수 있다’는 것도 나의 생각이다. 온정을 베푸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떤 사람은 온정을 베풀고 어떤 사람은 그 온정을 필요로 하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듬는 사회가 아니라 어렵기 때문에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한 사람이 없는 사회가 더 좋은 사회 아니겠는가?

요즘 나라의 품격(국격)을 높여야 한다는 정권측의 말이 자주 들린다. 정말 그렇다.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 아니라 세계 1위의 품격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며 자랑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품격있는 나라가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선이 필요없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선진국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떠들면서 비관자살자가 늘어나는 정치를 하는 사람들의 ‘선진’은 어떤 선진인지 묻고 싶다.

삶이 힘들어 죽음의 충동을 느끼는 사람이 늘고, 실제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나라는 부끄러운 나라다.

비관자살 없는 나라는 양극화구조의 타파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는 정부, 돈보다는 사람을 더 중시하는 품격있는 정부의 출현 없이 안된다는 것이 평소 나의 생각이지만 한해에 12,858명이나 되는 사람이 삶을 비관하여 죽어가는 참담한 현실 앞에서 이런 생각은 참으로 한가한 생각이다.

'비관자살만은 막아야 한다'.
이것이 우리 사회의 공론이 되고 정치적 행정적 제도적 조치가 취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래서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는 시절이 오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이것이 나의 새해 소원이다.

Posted by 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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