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길 의원이 의정부에 나타나 민주통합당 문희상후보의 지원유세를 했다는 소식이 들린다. 놀라운 일도 아니고 비난할 수도 없다. 놀라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권영길 의원만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며칠 전 텔레비전 토론에 나온 통합진보당의 부산 영도구 후보 민병렬은 민주통합당 후보들이 입는 노란색 옷을 입고 있었다. 민병렬이 통합진보당 당원이라는 걸 모르고 있었더라면 민주통합당 후보인 줄 오해할 뻔 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는 홍보물 표지에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와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을 올렸다. 권영길을 비난할 수 없는 것은 무서워서다. 이명박과 새누리당을 심판해야 한다고 열올리는 사람들이 무서워서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이명박이나 새누리당 인간들은 무섭지 않다. 내가 이명박이나 새누리당에 타격을 줄 수 있는 파괴적인 말을 찾을 수 있다면 설사 구속 사유가 되는 말일지라도 말할 용의가 있다. 겁이 많아서 감히 행동을 할 수는 없지만 말은 할 수 있다. 그런데 새누리당 심판론자들에게 거슬리는 말을 했다가는 이적행위자로 몰려 뭇매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에 할 말이 많지만 가급적 조심하며 지낸다.

권영길 의원이 나타난 의정부 (갑) 선거구에는 진보신당의 목영대 후보가 뛰고 있다.  목영대 후보는 뉴타운 반대 투쟁의 선봉에 서서 15 곳 뉴타운 재건설 지구 중에서 13곳을 해제-취소시켰다. (금의지구는 6개구역 중 4개구역이, 가능지구는 9개구역 모두 해제됨) 이 중에서 12 지구는 의정부 (갑)  지역에 있는데, 이 곳에 진보신당 목영대 위원장이 총선 후보로 출마했다. 지역 주민들이 목영대의 선거사무실 개소식 자리를 꽉 채우고 목영대 당선을 외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 선거구에 창원의 권영길 의원이 나타나 민주통합당의 문희상을 위한 유세를 했다고 한다. 권영길 의원이 누구인가? 그는 2007년 자신이 대선에 출마한 것이 민주노동당 분당의 도화선이 되었다며 참회의 눈물을 흘린 사람이다. 민주노동당 분당은 분당 때문에 진보세력의 의회진출이 타격을 입고 노동 현장이 어려워진 것도 문제였지만 민주노동당이 지향하던 자본주의 극복이라는 대의를 실현할 힘이 약화된 것이 더 문제였다. 문희상은 새누리당 심판을 내걸고 싸우는 후보이지만 목영대는 새누리당 심판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극복도 목표로 싸우고 있는 당의 후보, 즉 반자본주의 후보다. 그런데 권영길 의원은 이런 반자본주의 당의 후보를 돕는 대신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당의 후보를 돕기 위해 의정부까지 달려갔단다. 그에게는 자본주의를 반대하며 싸우는 진보신당의 후보보다 자본주의를 신봉하는 보수정당의 후보가 도와야 될 대상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물론 새누리당 심판이라는 명분이야 있겠지만 하필이면 진보신당 후보 중에서도 가장 오랜 기간 지역에 뿌리박고 가장 대중적으로 가장 이명박적인 뉴타운 사업에 맞서 싸운 진보신당의 후보를 골라 비수를 꽂는 행위를 굳이 권영길 의원이 나서서 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새누리당 심판이라는 명분 참 좋다. 일자리 많이 만드는 게 삼성이라며 삼성은 뭔 짓을 해도 용서해 줘야 한다던 어느 슈퍼 주인의 말이 갑자기 머리를 스친다. 새누리당과 별 차이가 없는 당의 후보도 새누리당 심판만 외쳐대면 동지인가?

1%만을 위한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바꾸겠다고? 새누리당 세상은 분명히 1%들의 세상이다. 그래서 바꿔야 한다. 그러면 민주통합당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99%의 세상을 만들겠다고? 어떻게? 민주통합당은 친노세력이 주도하는 당이다. 노무현 정신 계승, 좋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 사람사는 세상, 다 좋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세상을 만들 것인가? 누가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는가? 노무현은 정말 유능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그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며 출마한 사람들이 하나같이 죽은 노무현을 선거판에 불러내는 것도 살아있는 자신보다 죽은 노무현의 힘이 세다고 보는 증거다. 그런데 정작 노무현은 권력이 기업에 넘어갔다고 선언한 대통령 아닌가?

대통령의 권력으로도 자본을 이길 수 없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런데 죽은 노무현 보다 힘이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산 노무현 대통령도 백기를 든 자본을 이길 수 있을까? 아니 덤비는 시늉이라도 해 볼 수 있을까?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은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새누리당 심판론자들은 빈부격차나 양극화 배금주의를 칭송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그런데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이것들은 피할 수 없다. 어떤 정당 어떤 사람이 국정을 주도하는가에 따라 차이야 있겠지만 그 차이는 양적 차이이지 질적 차이는 아니다. 이것이 새누리당 심판론이 갖는 한계다. 물론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이 있는가? 자본주의를 극복할 방안은 있는가 하고 반박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반박의 여지가 자본주의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할 이유는 못된다. 새누리당 심판론자들은 이런 근본적인 문제 말고도 새누리당에 겨눈 화살을 자신에게도 겨눠야 할 이유가 있다. 새누리당과 별 차이가 없는 그들의 행태다. 최근에 민주통합당이나 통합진보당 일부 인사들이 하고 있는 행태를 보면 굳이 긴 설명을 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문성현 손석형의 3보일배를 보라. 욕심을 멸하라는 삼보일배의 정신까지 사욕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람들이 공익을 위해 헌신하는 정치인이 된다? 과연 믿어도 좋을까?

 

Posted by 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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