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나의 회갑년이다.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이 있지만 내겐 별로 와닿지 않는다. 지쳤다는 얘기일까.

뭘 어떻게 할까보다는 이쯤해서 짐을 내려놓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앞서는 것 같다.

1970년도에 대학에 입학했다.

입학 후 한달도 되지 않아 학내 향토개척단에 가입하여 단체활동을 시작했고 교련반대 데모에 참여하면서 사회운동을 시작했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농민운동, 반독재민주화운동, 진보정당운동을 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애증의 관계도 맺었다.

같이 했던 사람들 중에 지금도 비슷한 생각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길을 달리했고, 그들 중에는 내가 맞서 싸워야하는 상대로 바뀐 사람도 많다.

권력의 2인자, 도지사, 국회의원, 장관 등이 되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생활이 어려워 평범한 생활인으로 돌아간 사람도 있다.

세상은 그동안의 우리들의 고뇌와 희망을 비웃듯 불의하고 매정하며 퇴행적이고 야만적인 모습을 더욱 노골화하고 있다.

이런 세상에 맞서 인간적이고 정의로우며 따뜻한 공동체를 향해 싸우는 흐름 또한 계속되고 있지만 전망부재라는 느낌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소수의 야만적 지배세력은 돈과 권력을 독점하고 대중을 사상적 이념적으로 길들여 자신들의 지배체제내에 편입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지만 이들에 맞서고 있는 세력은 대중으로부터 고립되어 있다. 이건 정말 역설이다.

대중을 모든 것으로부터 배제하고 수탈하는 세력은 대중으로부터 지지받고 대중을 억압과 수탈로부터 구하고자 하는 세력은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런 역설은 왜 일까?

나는 단언한다.

저쪽은 자본주의 국가권력이라는 본질적이고 단순명쾌한 공통의 목표아래 하나가 되어있고(물론 구체적인 내부의 이해관계를 둘러싼 대립 갈등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쪽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쪽이 그들을 비판하고 반대하며 그들과 권력투쟁으로 볼 수 있는 싸움을 개별적 집단적으로 혹은 연대하여 하고는 있지만 어떤 체제·권력인가,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는 많이 달라 따로노는 측면이 더 강하다. 이러니 상대가 되기 어렵다.

반자본주의적(사회민주주의적 혹은 사회주의적) 국가권력이라는 목표를 향한 정치적 통일성으로 수렴되고 집중되는 다양한 실천, 이것이 답이라고 나는 믿어왔고 지금도 그렇다.

또 하나 있다. 관념적 이론적 지향은 진보적 민중적이나 실천은 그것으로부터 괴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나의 문제의식이고 내 일상의 아픔의 원천이다.

40년 가까운 세월을 거의 농촌에서만 지내며 자본주의의 제물로 전락한 바닥인생들과 함께 했지만 어떤 전망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소중한 시간만 까먹은 내 모습이 안쓰럽다.

소수가 하는 수공업적 활동방식의 비능률과 한계를 느끼면서 인터넷에서 활로를 열어봐야겠다 생각하던 차에 도민일보 김주완 미디어 부장을 다른 일로 만난 자리에서 김부장의 권유를 받고 블로그라는 나로서는 다소 생소한 것을 한 번 해보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물론 김부장이 만들어주었기에 할 수 있었다.

김부장에게 고맙다. 내가 열심히 하면 이것이 내 삶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좋은 계기가 될 것 같다.

뜻이 통하는 사랄들을 많이 만나 자본주의 국가권력이 쉼없이 만들어내는 온갖 말도 안되는 야만과 반동의 꽁무니만 쫓아다니며 허둥지둥하는 싸움의 방식을 훌쩍 뛰어넘어 자본가 권력을 정조준한 정치투쟁의 큰 판을 만드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

 

 

 

 

Posted by 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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