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거지는 어디 갔을까?

(조폐공사시보, 2002.05-06 진중권)

 

돈이 없는 사람을 흔히 ‘거지’라 부른다. 이 낱말이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좀 중립적으로 들리는 낱말, 즉 ‘걸인“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그들에게 예의를 갖추자. 예전에는 동네에서 흔히 걸인을 볼 수 있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까마득한 어린 시절엔 글자 그대로 바가지나 깡통으로 밥을 얻어 가던 각설이도 본 것 같다. 다만 각설이 타령만은 들어보지 못했다. 그 후로 기억나는 어린 시절의 걸인들은 밥 대신 돈을 달라고 했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문둥이‘라 낮춰부르던 나병환자, ’동냥아치‘라 부르던 걸인, 그리고 뭐가 좋은지 늘 헤헤거리고 다니는 바보들은 우리 삶의 풍경화 속에 들어와 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이들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도대체 그 사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옛날에 걸인들은 사지멀쩡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신체의 장애로 노동능력을 잃은 사람들이다. 물론 서울역의 노숙자들도 사지멀쩡하지만 노숙자는 이 동네, 저 동네 떠돌며 구걸을 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전형적인 ‘걸인’이리고 볼 수 없다. 그 많던 거지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제 더 이상 사지가 멀쩡한 사람은 구걸을 해서 먹고 살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세상 인심이 사나와진 건지, 소위 근대화 과정에서 노동윤리가 온 국민의 몸에 배서 그런지, 사지멀쩡한 사람이 일하지 않고 구걸을 하는 것을 사람들은 더 이상 고운 눈으로 봐주지 않는다. 게다가 과거와 달리 걸인들은 ‘부랑자’라 해서 국가에서 잡아다가 어디에 수용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대체 그 많던 거지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알 수 없다. 혹시 아시는 분?

 

‘거지’라는 이름의 걸인을 통해 우리는 시대와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한테 들은 얘기다. 파리에서 조선족 출신의 어느 중국 작곡가를 만났다. 그는 연변 출신으로 변방에서 출세하여 북경의 음악대학에서 교수로 지내다가 프랑스 정부의 초청을 받아 장학생으로 파리에 왔다고 한다. 그가 파리에 와서 지하철역에 널부러진 걸인을 보고 허탈감에 빠졌다고 한다. 왜? 중국에 살 때는 교수로서 제법 상류층에 속한다고 믿고, 술을 마셔도 프랑스제 와인만 사다 마셨는 데, 그 걸인이 자기가 마시던 것과 똑같은 그 와인을 마시고 있더라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고급한 삶의 상징으로 통하던 그 와인이 프랑스에서는 걸인이 마시는 싸구려 와인이었으니, 얼마나 허탈한가? 박완서씨의 말대로 “선진국은 거지도 때깔이 좋은” 모양이다. 허탈하기 싫으면 일단 잘 살고 볼 일이다.

 

파리의 택시 운전사 홍세화씨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의 걸인들은 구걸을 할 때 “여러분, 사회적 연대감을......” 이라고 한다고 한다. 멋있는 말이다. 한마디로 경제적 약자는 그저 동정을 받으며 사는 불쌍한 존재가 아니라 사회적 연대감을 표명해야 할 또 하나의 당당한 주체라는 것이다. 어쨌든 걸인에게 돈을 쥐어주는 것이 곧 경제적 약자에게 연대를 표명하는 것이 되는 사회는 아무래도 우리 사회와는 많이 다를 것이다. 우리에게 가난이나 빈곤은 사회의 책임이 아니라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 혹은 그의 운명으로 간주되지 않던가. 때문에 그들은 값싼 동정의 대상이 될지언정 서로 사회적으로 ‘연대’해야 할 주체는 아닌 것이다. 하여튼 경제적 약자와의 ‘연대’위에 서 있는 사회는 아무래도 우리 사회보다 더 인간적일 것임에 틀림없다.

 

우리에게 걸인이 된다는 것은 곧 게으름이나 무능력이나 운명의 탓으로 여겨진다. 개개인의 빈곤에 사회는 책임이 없다. 따라서 그들에게 연대를 보여줄 이유도 없다. 그래서인지 한국의 구걸 문화(?)는 연대라는 시회학적 코드가 아니라 자선과 동정심이라는 종교학적 코드위에 서 있다. 이 때문에 많은 동정을 자아내기 위해 구걸하는 사람은 가능한 한 자신을 비참하게 연출해야 하고, 맹인들이 부르는 노래 역시 동료시민들의 종교적 양심에 호소하는 찬송가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그 찬송가를 부르는 목소리 역시 애가 끊어질 정도로 구슬프고 애달프다. 딱 한 번 예외적인 경우를 본적이 있는 데, 그것은 10여년 전 인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전철 속에서였다. 때는 마침 개나리가 노랗게 피어오른 봄날, 한 맹인가수가 차량에 들어서더니 가곡을 부르는 게 아닌가.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그 노래를 부르는 그의 표정이 얼마나 밝고 환하던지 마치 천사처럼 보였다.

 

논리 따지기 좋아하는 독일에서는 거지들도 논증을 좋아하는 걸까? 한번은 베를린의 지하철에서 회안한 거지를 본 적이 있다. 차에 올라타자마자. 그는 당시 콜 수상이 이끄는 기민당 정권의 경제정책을 일일이 나열하기 시작했다. ‘콜은 이렇게 하겠다고, 저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정책을 폈다.’ 이어서 그 정책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이어진다. ‘하지만 이 주먹구구식의 정책은 아무 효과도 거두지 못하고, 오히려 수많은 문제를 낳았다 이게 바로 우리의 정치인들이 국민의 세금으로 봉급 받아가며 하는 짓이다.’ 그러더니 바로 이렇게 말을 잇는다. ‘여러분, 그 정책의 희생자를 여러분은 지금 눈앞에서 보고 있습니다. 한 푼 줍쇼...’ 순간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졌다...... 돈을 받아가며 그는 돈 준 이들에게 애프터 서비스를 한다. '이 돈으로 절대 마약 같은 거 사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겠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집 없는 천사로 사는 일이 쉽기야 하겠냐마는, 그래도 빈곤의 책임을 개인과 사회가 반, 반씩 나눠지는 곳에서는 이렇게 걸인도 당당한 모양이다. 그 사회의 모습을 보고 싶은가? 그러면 걸인들의 행색을 보라. 그 걸인들이 바로 그 사회의 모습이다. 어디 그 뿐인가? 당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고 싶은가? 그러면 걸인을 보라. 그들은 사회 속에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결인이 당당하지 못한 사회에서는 걸인이 아닌 사람들도 당당하지 못하다. 인간적 위엄을 갖고 싶은가? 그럼 걸인에게 인간적 위엄을 부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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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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